사투리는 단지 지역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한 공동체의 정서, 습관, 유대감이 응축된 말의 형태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집중되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사투리는 점점 더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문화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적 성장과 사회적 흐름에 의해 촉진된 언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도시의 성장과 사투리의 약화 사이에 놓인 언어사회학적 상관관계를 살펴본다.
도시는 표준어를 강요한다 – 언어의 ‘중앙 집중화’
도시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다양한 지방 출신 인구가 한 공간에서 혼합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가장 무난한 언어인 '표준어'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표준어가 언어의 공용 통화로 작동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수도권 중심의 언어 정책
서울 중심 표준어 교육 강화: 공교육 시스템은 서울식 표준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사투리를 의식적으로 억제하게 된다.
방송과 미디어: 지상파와 주요 언론사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언어 콘텐츠 대부분이 표준어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취업과 진학: 대도시로의 이동이 잦은 취업 시장에서, 사투리는 ‘촌스러움’이나 ‘비표준성’으로 인식되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도시가 클수록 ‘언어의 표준화 압력’이 강해진다. 다수를 위한 말이 소수의 말을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지역 커뮤니티의 해체 – 말투를 공유할 틀이 없어진다
과거의 농촌이나 소도시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견고했다. 이웃 간의 관계가 가깝고, 세대 간의 접촉도 잦아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웃과 말을 섞을 기회도 줄어들고, 공동체 언어를 공유할 기반이 붕괴된다.
도시의 특성은 사투리를 흡수하지 못한다
이주민의 언어 동화 현상: 대구, 광주, 부산처럼 고유 사투리를 가졌던 지역조차도 도시화가 진행되며 사투리를 쓰는 인구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세대 단절: 도시에서는 조부모 세대와의 언어 교류가 줄어들어, 자연스러운 사투리 전승 구조가 끊긴다.
학교/직장 내 표준어 문화: 지역 내 학교나 직장에서도 ‘표준어 사용’을 권장하거나 사투리를 웃음거리로 다루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지역 말’은 ‘지역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말’이 아니라, 아예 사용되지 않는 말로 퇴화된다.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말의 공간 자체가 사라진다.
도시화의 끝에서, 사투리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처럼 도시화는 사투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구조적 요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는 다시 사투리에 주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투리가 단지 말이 아니라, 지역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 자산이기 때문이다.
도시 속에서 부활하는 사투리의 방식
문화 콘텐츠화: 유튜브·웹드라마·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부 사투리가 ‘재미’와 ‘친근감’의 언어로 재생산된다. 예: ‘부산 사투리 썰’, ‘전라도 말투 챌린지’ 등
디지털 커뮤니티 회복: 지역 커뮤니티 앱, SNS 해시태그 등에서 지역 말투를 공유하는 온라인 언어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한다.
브랜딩 자산화: 지자체나 지역 브랜드에서 사투리를 관광 홍보 콘텐츠나 슬로건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 제주도의 ‘혼저 옵서예’, 전주의 ‘알랑가몰라유’
하지만 이런 현상은 대부분 사투리의 '기능'보다는 '디자인화'된 소비에 가깝다. 일상 언어로의 회복은 여전히 도시 환경 속에서 쉽지 않다.
말이 머무를 집은 어디인가
도시가 성장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언어는 효율성과 통일성을 요구받는다. 그렇게 표준어는 살아남고, 사투리는 밀려난다. 말은 공간의 산물이다. 공간이 구조를 바꾸면 말도 구조를 바꾼다.
우리가 사투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말맛’의 보존을 넘어서, 지역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관계의 방식을 지켜내는 일이다. 도시가 더 커질수록, 말은 더 빨리 표준화되고, 그 속에서 다양성과 개성이 줄어든다.
이제 우리는 되묻고 싶다. 도시 안에, 이 말이 머물 집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