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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 도시재생의 명과 암

by 유익한스토리 2025. 7. 2.

한때 도시의 심장이었던 재래시장. 넉넉한 인심과 북적이는 사람들, 손때 묻은 좌판과 주인장의 목소리로 가득하던 그 공간은, 이제 많은 곳에서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고층 빌딩 사이로 몇 개의 천막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예 자취를 감춘 채 ‘기억 속 장소’가 되어버렸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시장과 골목상권이 재정비되었다. 때로는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낡은 구조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시장이 품고 있던 공동체적 문화는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전통시장이 어떻게 쇠퇴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상인들이 품고 있는 기억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며, 마지막으로 도시재생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사라진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 도시재생의 명과 암

사라진 시장, 무너진 터전, 재건축과 대형마트의 파도 속에서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도시마다 중심에는 하나의 커다란 재래시장이 있었다. 이름난 5일장부터, 매일 문을 여는 상설시장까지. 이곳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일상과 삶의 무게가 응축된 장소였다.

하지만 IMF 이후 경제 구조가 바뀌고, 대형 할인점과 프랜차이즈가 빠르게 퍼지며 시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 중심의 도시계획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재래시장이 ‘재개발 대상지’로 분류되었고, 오래된 골목상권은 ‘비위생적’ 혹은 ‘낙후된 환경’으로 낙인찍혀 철거 대상이 되었다.

서울의 대표적 사례로는 신설동 경동시장 일부 구역, 동대문 청량리 미주상가 인근 골목상권, 성북구 정릉시장, 마포구 아현시장 등이 있다. 이들은 재개발로 인해 전면 철거되거나, 상인 일부만 상가 건물로 재입주했지만 임대료 부담으로 결국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시장터엔 이제 주상복합이 들어서고, 시장의 고유 냄새도 안 나고, 에스컬레이터도 있으니 좋아졌지만 그 속에서 사람 냄새들은 사라지고 없어진다.

상인들의 기억이 말하는 ‘시장’ - 물건보다 사람을 나누던 공간

재래시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싸게 물건을 사던 곳’으로만 그곳을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업고 장을 보던 엄마, 비 오는 날 우산 대신 비닐을 씌워주던 채소가게 주인, 외상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돌아섰던 단골들의 사연이 가득한 곳이었다.

상인들 역시 시장을 ‘밥벌이의 공간’ 그 이상으로 여겼다. 새벽부터 채소를 정리하고, 어묵 국물을 나눠먹고,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던 동료가 있던 그곳은 ‘가게’가 아니라 ‘마을’이었다.

재래시장에서는 아침마다 커피 한 잔 돌리고, 일 끝나면 같이 국수 말아 먹으며, 장사가 안 되는 날도 서로의 위로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용하고, 너무 낯선 느낌만 들뿐이다.

이처럼 상인들에게 시장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속도와 방향은 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새로 지어진 상가건물에선 상인 간 교류도, 단골 고객과의 관계도 희미해졌다. 임대료가 오르자 자영업자는 빠지고, 체인점이 들어섰다. 재래시장이 갖고 있던 지역성과 정체성은 점점 퇴색해 갔다.

도시재생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 재생인가, 대체인가

도시재생은 낡고 비효율적인 도시 구조를 정비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시장과 골목상권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면, 때로는 이 재생이 ‘대체’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삶의 터전을 밀어내고, 대기업 자본이나 투자 개발 중심으로만 채워지는 도시재생은 결국 주민 없는 도시를 만든다.

이와 대조되는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부산의 깡통시장, 전주의 남부시장, 서울 망원시장 등은 기존 상인과 구조를 최대한 살리면서 리모델링과 콘텐츠 확장을 병행해, 시장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관광객과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 경우다. 이들은 도시재생의 방향이 ‘철거 → 재건축’이 아닌, ‘존중 → 재구성’일 때 가능함을 보여준다.

또한 청년몰 프로젝트나 야시장 운영, 공방 입점 같은 시도는 시장을 단순한 유통공간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이마저도 단기 성과 위주의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되고, 실제 상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가 동반되어야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기억 위에 새 도시를 짓지 말 것

전통시장은 단지 낡은 건물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의 기억 공간’이었다. 도시재생이 진짜 ‘재생’이 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공간을 되살리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깔끔하고 세련되었지만, 내부에는 사람이 사라진 도시는 결국 껍데기일 뿐이다.

사라진 시장을 기억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서 다음 도시재생의 방향도 함께 정립되어야 한다. 시장을 지운 도시가 아니라, 시장을 품은 도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