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너머 잊힌 삶, 지워진 지도 위에서 다시 불러내는 이름들,
지도를 보면 ‘공백’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다. 민간인 통제선 안쪽, 군사보호구역, 사격장 주변. 행정구역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출입이 통제되고, 거주 자체가 제한된 지역이다. 그곳엔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 있었고, 논밭이 있었고,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안보 논리 속에서 그 터전은 철조망 너머로 사라졌고, 오랜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 글은 군사적 이유로 폐쇄되거나 철거된 마을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그곳에 남은 기억, 그리고 최근의 복원 시도나 재조명 흐름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국가와 삶’의 교차지점을 되짚어보려 한다.
철조망 너머, 마을은 사라졌다. 군사시설 확장과 함께 사라진 이름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안보 논리 아래 많은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였다. 특히 비무장지대(DMZ) 인근,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내부 지역, 사격장 인근의 마을들은 '임시'라는 명목으로 거주와 생계를 제한받았다가 결국 철거되거나 폐쇄되기에 이른다. 주민들은 이주를 강요당했고, 뿌리내리고 살던 마을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강원도 철원군의 ‘대마리’와 ‘궁예성 마을’, 파주 해마루촌, 연천군의 백학리 일대 등이 있다. 이 마을들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수백 명이 거주하던 생활 공동체였지만, 군사시설 확장과 안보상 이유로 출입이 차단되었고, 일부는 사격장 설치로 인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특히 경기도 포천 ‘영평리’는 육군의 대규모 사격장과 연습장이 위치하면서 수십 년간 주민들이 포탄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정부는 ‘보상금’을 이야기했지만, 주민들에게 그것은 삶의 대가라기보다는 침묵의 대가에 가까웠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살았지만, 국가는 우리를 기억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도에서 사라진 삶 – 증언과 기억의 조각들
사라진 마을은 단지 건물의 흔적만 지워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묻혔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여전히 그 마을을 기억하며, 증언하고, 기록하려 애쓴다.
예컨대 철원 ‘궁예성 마을’은 원래 600여 명이 살던 유서 깊은 마을이었지만 1953년 정전 이후 민통선 안으로 묶이면서 완전히 폐쇄됐다. 지금은 군부대가 사용하고 있어 민간인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출신 주민들은 해마다 기일에 맞춰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갖고, 마을 제사를 지내며 고향을 되새긴다. 또한 연천의 어느 마을에서는 1년에 한 차례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 고향터에 들어가 벌초를 하기도 한다. 이곳의 주민들은 소 키우고 밭 갈고 살며 산 이름도, 물 이름도 다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없다. 지도에도 없고, 사람들도 모른다.
이러한 개인적 기억은 최근 지역 사회와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구술사, 사진 아카이브, 지역 전시 등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은 단지 옛 이야기가 아니라, 군사주의와 개발 논리 속에서 지워진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시 걷는 길 – 복원과 재조명의 움직임
최근 들어 사라진 군사 지역 마을에 대한 복원 혹은 재조명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물리적 복원이 가능한 경우는 드물지만, 적어도 ‘기억의 복원’은 활발해지고 있다.
먼저 철원군은 ‘비무장지대 평화생태공원’ 조성을 통해 일부 민통선 내 마을 터를 복원하거나 그 흔적을 보존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마리, 궁예성터 일대에는 당시 주민들의 사진, 생활도구, 증언을 전시하는 자료관도 마련되었다. 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와 삶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파주시 일대에서는 민통선 마을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해마루촌 등 접근이 제한되던 지역을 일정 기간 개방해 ‘평화와 기억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20년 이후 비무장지대 내 일부 지역에 대한 출입 완화 정책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복원은 과거를 향한 향수로만 끝나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왜 이 마을들이 사라져야 했는가’라는 질문과, 삶의 공간이 안보 논리 속에서 희생되는 방식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억의 복원은 물리적 경계의 해체를 넘어서, 정책적, 역사적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을’을 다시 말하는 이유
‘군사적 이유’는 때로 모든 것을 침묵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실존적 삶이 있었고, 이름이 있었고, 관계가 있었다. 우리는 그 공백을 단지 안보의 언어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 기억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야 한다.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철조망 너머의 삶, 출입이 통제된 땅… 그곳은 국가가 지켜야 했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가가 품어야 했던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부르고, 살아 있었던 그 시간들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