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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도시 노동자의 하루 – 새벽 출근, 해 질 때 퇴근

by 유익한스토리 2025. 7. 7.

근대 도시화의 물결은 조선에도 파고들었지만, 그것은 조선인에게 번영보다는 고된 생계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경성, 부산, 평양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공장과 철도, 인쇄소 등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하게 되었고, 그들의 하루는 대부분 새벽에 시작해 해 질 녘에 끝나는 10시간 이상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① 일제강점기 도시 노동자들의 하루 일과, ② 그들을 둘러싼 노동 환경과 생계 조건, 그리고 ③ 식민지 산업화와 구조적 착취의 맥락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도시 노동자의 삶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도시 노동자의 하루
일제강점기 도시 노동자의 하루

새벽 5시에 시작된 하루 – 노동자의 시간표

일제강점기의 도시 노동자는 대부분 하루 평균 10~12시간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공장이나 철도 기관, 인쇄소에서 일하던 이들은 아침 5시~6시 사이에 일어나 곧바로 작업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근로 기준법이 없었고, 노동 시간은 사용자 마음대로 조절될 수 있었으며, 노동자의 주거지는 대부분 작업장 가까운 빈민가였기에 이동 시간조차 짧았습니다.

공장 직공은 보통 7시~8시에 조업을 시작하고, 점심 시간은 30분 내외, 오후에는 해가 질 무렵인 저녁 6시~7시가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일터에는 주 6일 혹은 7일 근무제가 적용되었고, 휴식일이나 휴가란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철도 노동자나 인쇄공과 같이 야간 작업이 필요한 직종은 밤샘 작업이나 교대근무가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1920~30년대 일제 경찰 기록이나 공장 노동 통계에도 ‘지속적인 피로’, ‘과로사’, ‘기계 사고’ 등이 빈번히 등장하며, 이들이 얼마나 무리한 노동을 강요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배곯음과 밀가루 죽 – 하루 식사의 풍경

도시 노동자들의 하루는 단지 길고 고된 노동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생계의 위태로움과 절대적 빈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공장 직공의 평균 임금은 월 10원~20원 사이,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은 그날그날 임금조차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고, 대부분은 아침에 보리밥이나 밀가루 죽, 점심으로는 된장국에 김치 정도, 저녁도 비슷하거나 더 간소한 식사를 했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자녀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는 기록도 많고, 출근 중 아침거리를 들고 뛰는 모습은 일상이었습니다.

주거환경 또한 열악했습니다. 다다미 한 장 남짓한 셋방, 판잣집, 달동네에 여러 가족이 함께 살거나, 단신 노동자는 공장 기숙사 또는 여관방을 전전했습니다.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여 있던 노동자들은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고, 병원 치료조차 경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처럼 하루 12시간의 고된 노동 속에서도 배를 곯는 삶, 아파도 쉴 수 없는 현실은 단지 ‘가난’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구조적 억압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인만 ‘싼 값에’ – 식민지 산업화와 착취 구조

일제는 조선을 ‘공업의 보조적 기지’로 삼으면서도, 본토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이 구조 속에서 “싼 노동력”으로 동원되었고, 같은 일터에서도 일본인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는 2~3배에 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성의 인쇄소에서는 일본인 조판공이 하루 2원을 받는 반면, 조선인 조판공은 0.6원에 그친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서는 노동조합 활동, 파업, 근로자 권리 주장 자체가 탄압 대상이었기에, 조선인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조건을 개선할 최소한의 방법도 없었습니다. 1923년 조선노동총동맹 같은 조직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감시와 탄압으로 무력화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일부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동맹휴업 같은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31년 평양의 방직공장에서 있었던 여성 직공들의 파업은,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선 조선인 여성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큰 상징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일제의 공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고, 이후 관련자들은 해고되거나 투옥당했습니다.

결국 일제강점기 도시 노동자의 하루는 단순히 ‘가난한 근로자’의 하루가 아니라, 식민지 체제 아래서 자행된 ‘체계적 착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조선인은 인격 없는 노동력으로 전락했고, 인간다운 삶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침묵 속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우리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으로 공장 굴뚝을 떠올리지만, 그 그림자 속에는 이름 없이 사라진 노동자들의 하루가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의 도시 노동자는 기계처럼 일하다, 기계에 짓눌려 생을 마감하거나, 가난과 병 속에서 침묵한 채 하루를 넘겨야 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도시와 노동, 권리와 생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오늘의 도시가 가능했던 이유 중에는, 그들이 겪은 고단한 하루의 축적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