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세계는 기술 혁신만큼이나 철학적 대립이 자주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이더리움 하드포크 사태이며, 이로부터 파생된 프로젝트가 바로 이더리움 클래식(Ethereum Classic, ETC)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더리움(ETH)’을 더 익숙하게 여기지만, 이더리움 클래식은 그 뿌리에서 출발해 탈중앙화 철학을 고수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진짜 이더리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더리움 클래식의 탄생 배경부터 철학, 기술적 차이, 생태계 발전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깊이 있게 분석과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1. 이더리움의 분열 – 다오(The DAO) 사건과 하드포크의 배경
이더리움 클래식의 역사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더리움 생태계는 혁신적인 실험 중 하나인 The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프로젝트로 전 세계 개발자와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DAO는 누구나 참여해 투자하고 투표로 운영 결정을 내리는 스마트 계약 기반 조직으로, 당시 기준 약 1.5억 달러라는 막대한 이더리움이 투입되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스마트 계약의 취약점을 이용한 해커의 공격으로 DAO의 자금 약 3,600만 달러 상당이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커뮤니티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개발진은 이더리움 네트워크 자체를 하드포크해 탈취된 자금을 되돌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 결정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코드는 법이다(Code is Law)”라는 원칙 아래 블록체인 불변성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더리움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포크된 새 체인을 이더리움(ETH), 원래 체인을 이더리움 클래식(ETC)이라 부르며 독립적인 길을 걷게 됩니다.
2. 철학적 정체성 – 코드의 절대성과 이더리움 클래식의 신념
이더리움 클래식의 핵심 가치는 단연 블록체인의 불변성입니다. 탈중앙화의 가장 중요한 기둥은 "누구도 데이터를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되돌릴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더리움 클래식은 이를 단호히 지켰습니다.
이더리움 클래식 진영은 DAO 사건을 통해 “도덕적 판단이 기술적 규칙을 앞설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고, 그로 인해 ETC는 기술보다도 블록체인 철학의 순수성을 지키는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철학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닙니다. 이더리움 클래식은 정부, 기업, 개인 누구도 영향을 줄 수 없는 검열 저항성(Censorship Resistance)과 계약 불변성(Immutability)을 근간으로 삼아,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공공 인프라를 지향합니다.
결국 ETC는 기술 발전과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ETH와는 다른 궤도에서 움직이며, "디지털 헌법"을 절대화한 블록체인으로 기능하고자 합니다.
3. 이더리움과의 기술적 차이점 – 진화하는 방향성의 차이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적 구조와 로드맵에서도 차이가 확연히 벌어졌습니다.
작업증명(PoW) 대 지분증명(PoS)
가장 큰 차이는 합의 알고리즘입니다. 이더리움은 2022년 ‘머지(Merge)’를 통해 PoW에서 PoS로 전환했지만, 이더리움 클래식은 여전히 작업증명(PoW)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보안성과 탈중앙화 면에서 PoS보다 강하다는 주장을 받으며, 채굴자 기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계약 호환성
이더리움 클래식은 이더리움과 동일한 EVM(Ethereum Virtual Machine)을 사용합니다. 이는 이더리움용으로 작성된 스마트 계약이 ETC에서도 거의 그대로 실행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생태계의 크기나 도구 지원 면에서는 ETH에 비해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네트워크 안정성과 보안 문제
이더리움 클래식은 2020년에 51% 공격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이는 채굴 파워의 집중으로 인해 가능해진 공격 방식으로, 이후 ETC는 MESS(Multiple Epochs Summation Score)라는 보안 조치를 도입해 방어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4. 생태계와 사용처 – 아직은 작은 불꽃
ETH 생태계는 수많은 디앱(DApps), NFT, 디파이 프로젝트 등으로 성장했지만, ETC는 비교적 조용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ETC의 개발은 멈추지 않았으며, 현재도 소규모 개발자 커뮤니티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채굴자들의 대안지로 주목
ETH가 PoS로 전환되면서 많은 GPU 기반 채굴자들이 갈 곳을 잃었고, 이들은 ETC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ETC는 한때 해시레이트가 급증하며 채굴 중심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금으로서의 가능성
이더리움 클래식은 빠르게 진화하기보다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목표로 합니다. 이런 특성은 오히려 일부 보수적인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디지털 금" 또는 "안정된 스마트 계약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5. 앞으로의 전망 – 사라지지 않는 순수한 블록체인의 상징
이더리움 클래식은 시장 점유율이나 사용자 수로만 본다면 ETH에 크게 밀립니다. 하지만 ETC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대안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존재 이유가 명확한 프로젝트입니다.
확장성과 협업의 가능성
최근 ETC는 비트코인 생태계와도 기술적으로 연결을 시도하고 있으며, 일부 라이트닝 네트워크나 크로스체인 브리지 프로젝트에 연동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탈중앙화 ID, 투표 시스템, 공공 블록체인 등 여러 분야에서 실험적인 적용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원칙을 지키는 소수자의 길
이더리움 클래식은 유행과 속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는 단점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블록체인이 왜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더리움 클래식이 던지는 질문
이더리움 클래식은 기술적인 화려함보다 블록체인의 본질과 철학을 지키는 것에 집중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근본 원칙이 없다면 흔들리는 기반 위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블록체인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더리움 클래식은 오늘도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각자의 철학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ETC는 그 신념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