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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 도시재생의 명과 암 한때 도시의 심장이었던 재래시장. 넉넉한 인심과 북적이는 사람들, 손때 묻은 좌판과 주인장의 목소리로 가득하던 그 공간은, 이제 많은 곳에서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고층 빌딩 사이로 몇 개의 천막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예 자취를 감춘 채 ‘기억 속 장소’가 되어버렸다.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시장과 골목상권이 재정비되었다. 때로는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낡은 구조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시장이 품고 있던 공동체적 문화는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이 글에서는 먼저 전통시장이 어떻게 쇠퇴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상인들이 품고 있는 기억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며, 마지막으로 도시재생이 남긴 ‘빛과 그림.. 2025. 7. 2.
철길 따라 사라진 간이역 – 이름 없는 역사의 흔적들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풀숲에 묻힌 녹슨 철길이나 폐허처럼 남겨진 작은 간이역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언젠가 분명 기차가 멈췄고,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이별을 나누었을 플랫폼. 하지만 지금은 역명판조차 지워져 이름도 없이 잊힌 채 시간 속에 잠들어 있다. 간이역은 산업화와 도시 확장, 교통의 고속화 속에서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자리엔 단지 철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을의 생활과 정서, 삶의 동선이 오롯이 얽혀 있었다.이 글에서는 먼저 간이역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사라진 역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되고 있는지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이름 없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기차보다 느렸지만, .. 2025. 7. 2.
도시 확장에 흡수된 농촌 – 개발의 이면에 사라진 이름들 도시가 커진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가 늘어난다는 뜻만은 아니다.확장된 도시는 주변의 논과 밭, 자연마을을 품으며 다른 삶의 방식과 공간들을 잠식한다. 그 과정에서 마을 이름은 아파트 단지명에 남고, 논과 밭은 콘크리트 바닥이 된다.신도시, 택지개발지구, 도시계획사업.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러한 변화들은 많은 농촌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더는 ‘○○리’로 불리지 않고, ‘○○e편한세상’이나 ‘○○자이’로 바뀐 곳들. 놀랍게도 그곳은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모내기철이면 분주한 농촌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도시 확장에 흡수된 농촌 마을의 흔적을 추적하며, 사라진 삶의 방식과 공간, 그리고 이름만 남은 마을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논밭 위의 신도시 – 택지개발과 마을의 소멸199.. 2025. 6. 29.
바다로 잠긴 마을 – 수몰지역의 기억과 다리 아래 묻힌 집들 호수처럼 잔잔한 물 아래, 누군가의 고향이 잠겨 있다. 지금은 물 위로 배가 떠다니고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그곳에,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고, 봄이면 논두렁에 꽃이 피었으며, 제삿날이면 마을 전체가 분주했다. 수몰지역은 이름 그대로 물에 잠긴 마을이다. 대부분은 댐 건설이라는 국가적 대의명분 아래 이루어졌다. 농업용수 확보, 전력 생산, 홍수 조절이라는 이유로 수십 개의 마을이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들은 강을 따라 살았고, 결국 그 강에 묻혔다.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몰지역 사례를 통해 물에 잠긴 마을의 전후 풍경, 사라진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기록과 추모의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지금은 다리 아래, 댐 아래 묻힌 그 마을들은 결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2025. 6. 29.
지도에서 지워진 행정구역 – 통합되고 흡수된 동네의 정체성에 대하여 도로는 그대로인데, 동네 이름이 사라졌다. 주소는 남아 있어도, 더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어떤 마을들은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지도에서 삭제되었다.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읍·면·동 단위의 통합 작업은, 효율적인 행정 운영과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도시 외곽이나 농어촌 지역은 인구 감소로 독립적인 행정단위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동네들이 다른 지역에 흡수되거나 명칭을 잃은 채 통합되었다.그러나 한 지역의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과 역사, 기억의 단위다.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지역의 정체성과 삶의 흔적이 희미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이번 글에서는 1990~2000년대 한국의 행정구역 통폐합 사례.. 2025. 6. 28.
폐교가 된 초등학교, 그 후의 삶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시골의 초등학교 교정. 3월의 입학식과 12월의 종업식, 알림장과 급식시간, 체육대회와 음악발표회. 그 모든 추억의 무대가 어느 날 문을 닫는다. 아이가 사라지고, 선생님이 떠나고, 종이 울리지 않는 날들이 시작된다.‘학생 수 0명’. 이 짧은 숫자는 한 학교가 문을 닫는 절대적인 조건이다.한국은 1980년대부터 급격한 인구 감소와 도시 집중화로 인해 수많은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에서 문을 닫은 폐교는 4,000곳을 넘는다. 특히 농산어촌에 위치한 작은 분교들은 수업일수 부족, 교사 배치 문제 등으로 인해 점차 그 명맥을 잃어갔다.하지만, 폐교는 끝이 아니다. 교실은 비었지만, 그 공간은 전혀 새로운 쓰임을 통해 다시 ‘살.. 2025. 6. 28.